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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전 총리, 동반성장과 한국경제
2015-11-20 오후 5:53:33 관리자 mail kgbpost@naver.com

    한국경제, 어떻게 살릴 것인가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

    2015.11.18

     

    I. 한국사회의 위기와 기회

    II. 한국경제의 명암

    III. 동반성장 단기적 성장전략

    III.1 동반성장의 원리: 국민경제의 선순환

    III.2 동반성장을 위한 구체적 시책

    III.3 노동시장 정상화와 증세

    III.4 동반성장의 과실과 사회공동체 운영원리

    IV. 교육혁신 장기적 성장전략

    IV.1 체력창의력 함양

    IV.2 학제간 유기적 협력

    V. 한국사회의 불의부정부패

    VI. 한국 정치체제의 개혁

     

     


    UnChan_Chung

    . 한국사회의 위기와 기회

     

    온 국민을 비탄에 빠뜨린 세월호 참사는 아직도 우리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세월호 참사는 우발적 재난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누적된 구조적 모순이 드러난 것입니다. 세월호 참사는 또한 우리나라가 비록 경제는 외형적으로 크게 성장했다 하더라도, 사회 각 부문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면서 발전하지 않을 때는, 하루아침에 재난과 위기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1990년대 중반 한국은 OECD 가입과 더불어 세계 일류국가의 대열에 합류한 것처럼 우쭐댔습니다. 그러나 곧이어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아야했던 경제위기를 맞아 온 나라가 휘청거렸습니다. 그 후 비록 눈앞의 급한 불은 껐다고 하지만, 나라 전체로 보면 지금까지도 위기의 적신호는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경제성장은 일부 대기업들의 수출에 의존하고 있고, 중산층은 붕괴해가고, 서민들은 생존의 위협에 내몰리고 있습니다. 청년실업과 비정규직 양산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습니다. 또한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많은 사람들은 평생에 결쳐 안정된 삶을 설계하기 어렵습니다. 노동시장의 과도한 유연화로 그나마 직장을 가진 사람마저도 각자의 일터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성실한 직업윤리를 발휘하기 어렵습니다. 수많은 인명이 경각에 달려 있는 위기상황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허둥댄 정부의 무능한 대처는, 정치적형식적 민주화에도, 진정으로 국민을 위하는 민본통치를 구현하고 나라가 제대로 작동하는 정상국가를 바로 세우는 일이 실로 요원함을 일깨워 줍니다.

    그러나 온 국민이 동참한 통렬한 비탄과 공분(公憤)을 보면서, 우리는 국민의식의 저변에 아직도 다른 사람의 고통을 공감하고 함께 나눌 줄 아는 따뜻한 인간적 유대 의식이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도 안될 것입니다. 그러한 윤리의식이 이성적으로 승화되어 공동체의 윤리로 성숙하는 한, 우리 사회에는 아직 희망이 있습니다. 지금 한국사회는 국민의 단합된 힘을 모아서 진정한 일류사회로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 상시적 위기상황에 내몰려서 계속 표류할 것인가 하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습니다.

     

     

    . 한국경제의 명암

     

    그런데 일류국가가 되는 것이 말처럼 쉽진 않습니다. 상당한 경제력의 바탕 위에 국정이 원활하게 운영되어야 하고, 아울러 신뢰나 규범, 사회적 네트워크 등 사회적 자본이 사회전반에 걸쳐 충분히 쌓여 있어야 가능합니다. 한마디로 말해 국력을 내실 있게 키워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먼저 우리 사회가 처해있는 현실을 냉정히 직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보자면 한국사회는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동시에 갖고 있습니다. 밝은 면을 말씀드리면, 한국은 세계에서 인구가 5천만명이 넘으면서도 1인당 소득이 2만 달러가 넘는 오직 7개 국가 가운데 하나입니다. 자랑스럽습니다. 다른 6개국은 미국, 일본, 독일, 영국, 불란서, 그리고 이태리입니다.

    어두운 면은 저성장과 양극화입니다. 1980년대 8.6%, 90년대 6.7%이던 경제성장률이 2000년대 들어서는 4.4%로 하락하더니 10년대에는 2~3%대까지 떨어졌습니다. 소득분배도 점점 악화되었고, 삼성현대LGSK 4대재벌이 1년에 올리는 매출액이 이제는 GDP60%에 육박할 정도로 재벌 의존도가 커졌습니다. 경제적 힘이 한쪽으로 쏠리면서 위험에 대한 노출이 증가하고 있을 뿐 아니라 경제 전체의 활력도 떨어지고 있습니다. 한국을 상징하던 표현이었던 Dynamic Korea가 아득한 옛날 일처럼 느껴집니다. 한국경제를 이대로 놔두면 경제가 쇠약해짐은 물론이요 언젠가는 사회 전체가 결속력을 잃고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휩싸이게 될까봐 심히 우려됩니다.

    한국경제의 밝은 면은 더 밝게 하고 어두운 면은 덜 어둡게 해야 합니다. 먼저 한국경제를 크게 성장시킨 요인부터 따져봅시다.

    첫째, 교육 및 인적자원 투자에 대한 강조가 핵심적이었습니다. 주요 천연 자원도 축적 자본도 없는 한국으로서는 경제성장을 추진하기 위해 교육 수준이 높은 노동력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석봉의 유명한 일화에서 보듯이 교육열은 한국에서 오랜 전통을 자랑합니다. 한국이 세계에서 유례없는 경제성장을 이룩한 것은 무엇보다 우리 부모님들이 한석봉의 어머니처럼 훌륭한 자식을 키우는 데 지극정성을 쏟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런 열의가 모여서 훌륭한 인재들이 배출되고 국가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던 것입니다.

    발전의 두 번째 요인은 '하면 된다'는 과감한 도전정신이었습니다. 급속한 산업화 과정에서 많은 한국인은 자신과 가족과 공동체를 빈곤에서 구제하기 위해 각고의 헌신적 노력을 다했습니다. 우리의 젊은 남녀들은 일자리가 있는 곳이라면 먼 타국도 마다하지 않고 가서 일함으로써 현지 경제뿐 아니라 한국경제 또한 발전시켰습니다. 1960년대에 한국인들은 서독에 광부와 간호사로 일하기 위해 갔으며, 서독 경제의 성장에 기여했습니다. 한국인들의 근면 성실에 감탄한 서독 정부는 상당액의 개발차관을 제공했습니다. 그것은 한국이 받은 최초의 개발차관이었습니다. 70년대에 중동의 건설붐을 타고 많은 한국 건설 노동자는 이 지역의 핵심 기반시설과 개발계획 수립을 도왔습니다. 이 노동자들은 자신이 받은 임금을 고국으로 송금했으며, 그 덕분에 가족들은 자식들을 학교에 보낼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교육에 대한 아낌없는 투자와 과감한 도전이 가능했던 것은 그런 헌신적 노력을 통해 더 나은 미래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는 밝은 희망이 살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더 나은 미래사회에서는 우리 모두가 함께 잘 살 수 있다는 믿음을 공유했기에 강력한 국민적 결속력이 생겨났습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한국의 근대화 과정에서 산업화와 민주화의 열망은 대다수 국민이 함께 공유하고 지향했던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어두운 면은 어디서 유래할까요?

    우리나라에서는 1960년대 초 정부 주도의 본격적 경제개발계획이 실시된 이래 지금까지 반세기 동안 선성장 · 후분배에 입각한 경제성장이 정부 경제정책의 기본 전략이었습니다. 80~90년대를 거치면서 우리 경제에 시장메커니즘이 대거 도입 · 정착되긴 했으나, 선성장 · 후분배라는 기본 접근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습니다.

    이에 따라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 사회는 수출 및 중화학공업과 같은 특정 부문을 선도부문으로 먼저 육성하고 그 성과가 경제 전체에 파급되기를 기대하는 불균형 성장전략, 이른바 낙수효과 모델에 전적으로 의존해왔습니다. 성장과 효율을 극대화하는 것이 지상 목표였고 분배와 형평은 부차적 고려사항이었습니다. 물론 이러한 불균형 성장전략은 경제개발 초기 단계에서는 매우 효과적일 수 있지만, 언제까지나 그런 건 아닙니다. 불균형 성장의 결과 소수 대기업에 편중된 산업구조가 고착되었고, 국민 대다수의 고용과 소득을 담당하는 중소기업은 대기업과의 수직적 관계 속에 불공정 거래를 감수해야 하는 위치로 전락했습니다.

    특히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우리 경제의 가계부문과 기업부문이 각기 양극화의 가속적 심화를 경험하면서 분배문제는 지속적으로 악화되어 왔습니다. ‘고용 없는 성장이라는 말이 회자되더니 최근에는 많은 경제학자들이 임금 없는 성장의 문제를 경고할 정도로 상황이 심각합니다. 그 결과, 오늘날 가계부채와 중소기업 부실은 한국경제의 발목을 잡는 양대 문제로 자리 잡았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분배의 공정성을 개선하지 않고는 더 이상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게 된 핵심적 배경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현재 우리 사회는 가계부채가 1,000조원이 훨씬 넘습니다. 가계부채가 너무 많으니 다들 허리띠를 졸라 매고 있습니다. 내수가 줄어드니, 특히 중소기업과 자영업은 타격이 큽니다. 쌓이는 재고로 이들의 투자는 부진합니다. 이때 수출 대기업의 뛰어난 성과도 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지난 4반세기 동안 급속히 진행된 세계경제의 개방화와 정보화, 그리고 한국사회 특유의 갑을관계 문화로 인해 국내의 산업간 연관관계가 단절되었고, 그 결과 수출과 내수 간, 그리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에 고용과 소득을 만들어내는 선순환의 연결고리가 크게 약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랫목의 온기가 윗목으로 전달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결국, 국내 소비 및 투자의 위축은 성장 둔화와 양극화 심화를 가져옵니다. 이는 [양극화 심화 가계부채와 중소기업 부실 누적 내수 부진 성장 둔화 양극화 심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한국경제에 반복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의 의식수준은 지금까지도 지난 반세기 동안의 선성장 · 후분배의 관성 또는 미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는 오랜 세월을 거치며 확립된 불공정한 분배 관행과 기존 이해관계의 조정이 쉽지 않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부자이든 영세민이든,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한국경제라는 배에 동승한 현실 속에서, 더 이상 실기하면 모두에게 공멸입니다.

    21세기를 맞이한 우리 사회가 양극화의 개선 없이는 성장 둔화를 피할 길이 없습니다. 동반성장은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서 나왔습니다.

     

     

    III. 동반성장 단기적 성장전략

     

    양극화를 완화하고 한국경제를 저성장의 늪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서는 동반성장이 필요하다는 말씀을 이미 드렸습니다. 그러면 동반성장의 의미 또는 원리부터 다시 한 번 설명 드리겠습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기계적인 완전 평등은 가능하지도 않을 것이고, 어떤 의미에서는 바람직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즉 부자도 있고 가난한 사람도 있고, 대기업과 함께 중소기업도 있을 것이고, 성장하는 산업이 있으면 사양산업도 있기 마련입니다. 모두를 똑같게 만들 수는 없습니다. 문제는, 한 분야의 성장 효과가 그 분야에만 고이지 않고 다른 분야로 빠르게 확산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경제는 순환이라고 합니다. 국민경제를 구성하는 각 부문이 상호 긴밀하게 연결되어서 선순환하도록 하는 것이 동반성장의 요체입니다.

     

    III.1 동반성장의 원리: 국민경제의 선순환

    국민경제의 선순환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면, 두 가지 흐름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째, 부자 · 대기업 · 성장산업 등 선도부문의 성장 효과가 아래로 잘 흐르도록 하는 것입니다. 낙수효과(top-down track)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바와 같이, 과거 반세기 동안 한국경제는 선성장 · 후분배의 불균형 성장전략만을 추구하다 낙수효과의 연결고리가 거의 끊어지게 되었습니다. 이 끊어진 고리를 다시 이어야 합니다. 2012년 대선 과정에서 이른바 경제민주화라는 기치와 함께 재벌개혁이나 대기업의 불공정 하도급거래 근절과 같은 대책들이 논의되었는데, 이러한 대책들이 바로 낙수효과를 정상화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저개발 상태에서는 성장이 최선의 복지정책이 될 수 있습니다. 1960~70년대의 한국경제가 경험했듯이, 소수의 선도부문을 선별하여 한정된 자원을 집중 지원하고 심지어는 일정정도의 편법을 용인해주는 것이, 성장을 촉진하는 효과를 가져 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고용 확대를 통해 다수 서민층의 생활수준을 끌어올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경제는 이미 그 단계를 지난 지 오래되었습니다. 이제는 불법 · 편법을 근절하고 공정한 경쟁질서를 확립하는 것이 지속가능한 성장, 그리고 동반성장을 위한 필수요건이 되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이른바 재벌개혁, 즉 대기업(집단)의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만들고 과도한 경제력 집중을 억제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대 · 중소기업 간의 하도급거래에서 납품단가 후려치기나 기술탈취 등과 같은 불공정거래 관행을 근절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골목상권을 보호하고 중소기업 적합업종을 지정하는 노력도 필요합니다. 우리 사회의 일각에서는 이러한 노력을 시장경제 원리를 파괴하는 과도한 규제라고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불법과 편법, 그리고 경제력의 남용이야말로 시장경제를 파괴하는 요소입니다. 따라서 만인이 법 앞에서 평등한 법치주의를 확립하고, 모든 국민에게 균등한 기회를 부여하는 공정한 경쟁질서를 창출하는 것이 시장을 바로 세우고 동반성장을 이끌어내는 길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하도급 중소기업 · 비정규직 노동자 · 영세 자영업자 등 경제적 약자에 대한 의식적 배려와 적극적 지원이 필요합니다. 이를 분수효과(bottom-up track)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낙수효과의 정상화가 가장 기본적인 과제인 것은 틀림없지만, 이것만으로 한국경제가 봉착하고 있는 양극화와 저성장의 문제를 극복하기에는 충분치 않습니다. 시장이 아무리 공정하게 작동하더라도 능력이 부족해서 또는 운이 없어서 소외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마련입니다. 더구나 우리나라에서 지난 반세기 동안 시행된 극도의 불균형 성장전략의 결과 구조적 장벽이 너무나 높게 설치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다수 국민의 고용과 소득을 늘리는데 정책적 노력을 집중할 필요가 있으며, 이는 서민층의 생활을 안정시키는 직접적인 효과뿐만이 아니라, 내수의 확대를 통해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의 고용과 투자를 자극함으로써 성장을 가속화하는 간접적인 효과도 가져 올 것입니다.

    분수효과와 관련하여 최근 주목할 만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현 정부의 2기 경제팀이 수출과 투자에 의존한 과거 성장모형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내수와 고용을 자극하는 정책들을 내놓고 있습니다. 이러한 정책들이 우리 사회에서는 충격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나, 사실 일류국가나 국제기구에서는 상당히 오래 전부터 논의되고 시행된 소득주도 성장전략’(income-led growth strategy)을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양극화와 저성장의 현상은 세계 모든 나라가 공통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문제이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소득주도 성장전략이 시도되고 있는 만큼, 외국의 선례를 참조하면서 우리 실정에 맞는 분수효과의 길을 찾아야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현 정부 2기 경제팀이 내놓고 있는 정책들, 특히 이른바 가계소득 증대세제 3대 패키지의 기본방향은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구체적인 내용에 들어가면 다수 국민의 소득을 늘리고 내수를 자극한다는 애초의 취지에 걸맞게 잘 설계되었는지에 대해 의문이 없지 않습니다. 부자나 대기업의 소득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하도급 중소기업과 비정규직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의 소득증대에 기여하는 활동에 세제 혜택이 가는 방향으로 정책수단의 세밀한 측면을 보완해야 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동반성장을 위해서는 낙수효과와 분수효과의 선순환적 결합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우리 사회의 보수진영에서는 낙수효과만을 일방적으로 강조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장만능주의를 맹신한 결과 오히려 공정한 시장경쟁을 파괴하고 기득권을 고착시키면서 그들만의 잔치로 전락하는 폐단을 낳았습니다. 반면, 우리 사회의 진보진영에서는 분수효과만을 일방적으로 강조하는 반대 경향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는 자칫 개인의 경제하려는 의지를 훼손하고 시장경제의 역동성을 떨어뜨리면서 복지정책을 통한 사후적 분배에 과도한 부담을 지우는 문제가 없지 않았습니다. 낙수효과와 분수효과 중 어느 하나의 경로(track)만으로는 동반성장을 달성할 수 없습니다. 낙수효과와 분수효과를 결합하여 선순환의 효과를 낳아야 합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입니다. 개개인의 의식과 행동을 바꾸고 우리 사회의 법제도와 관행을 혁신해야 하는 지난한 과제입니다. 그러나 다른 길은 없습니다. 낙수효과와 분수효과를 결합하는 동반성장만이 우리의 살 길입니다.

     

    III.2 동반성장을 위한 구체적 시책

    다음으로 동반성장을 위해 시급히 추진해야 할 정책적 과제 몇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무엇보다 먼저, · 중소기업간 동반성장을 이루기 위한 정책적 노력이 시급히 요구됩니다. 당장 실천하기 쉬운 것들부터 따져봅시다. 우선, 초과이익공유(협력이익배분)를 실행해야 합니다. 대기업이 목표한 것보다 높은 이익을 올리면 그것의 일부를 중소기업에 돌려 중소기업이 기술개발, 해외진출, 그리고 고용안정을 꾀하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코 시혜적인 것이 아닙니다. 보상적인 것입니다. 초과이익의 적지 않은 부분은 납품단가 후려치기 등 불공정거래에 연유하기 때문입니다. 둘째, 중소기업 적합업종을 선정하여 대기업이 더 이상 지네발식 확장을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은, 중소기업의 사업영역을 보호하기 위해 대기업들의 신규 참여 확대를 금지하는 업종을 선정함으로써 중소기업의 자생력을 키워주자는 취지입니다. 물론 대기업의 참여 금지만으로 소기의 성과를 달성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중소기업 자체의 경쟁력 제고를 위한 자조적 노력과 정책적 지원이 결부되어야 합니다. 셋째, 정부가 조달청을 통해 재화나 서비스를 조달할 때 일정부분 이상을 중소기업에 직접 발주하도록 하는 등의 노력이 당장 필요합니다.

    이러한 방안들은 기존의 불공정한 게임룰 아래에서라면 대기업으로만 흘러가 고여 있을 돈이 중소기업에 합리적으로 흘러들어가도록 유도하는 조치들입니다. 물론 중 · 장기적으로는, 대기업 위주의 경제정책을 중소기업 위주의 신산업정책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중소기업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사람입니다. 좋은 학생들을 중소기업으로 유도하기 위해서 학자금 융자에 혜택을 준다거나 군복무에 혜택을 줄 수도 있습니다. 또한 중소기업의 해외진출을 위해 국가기관, 예를 들면 KOTRA가 대학, 중소기업 등과 협력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정부의 R&D 자금 배분을 대기업 위주에서 중소기업 위주로 바꾸어야 합니다.

     

    III.3 노동시장 정상화와 증세

    한편 비정규직의 근로조건을 향상 · 안정화시키면서 궁극적으로는 정규직으로의 전환을 촉진하고, 최저임금을 꾸준히 인상함과 동시에 그 사각지대를 방지하기 위한 근로감독을 강화하는 등 노동시장의 정상화를 위한 노력도 더 이상 늦추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나라에는 비정규직 등 불안정 고용계층이 아주 많습니다. 특히 청년층의 불안정 고용은 잦은 이직을 통해 숙련형성을 저해함으로써 미래 세대의 인적자본 축적에 결정적 장애가 됩니다. 나아가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고용 관행은 한 나라 안에 두 개의 국민을 만드는 불행한 결과를 초래합니다. 따라서 공공부문이 솔선수범하여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계획을 수립 · 집행하고, 민간기업의 정규직 전환 노력에 대해서는 강력한 재정 · 세제상의 지원책을 마련해야합니다.

    또한 중소기업에 비정규직이 많은 현실을 감안하면, · 중소기업간 동반성장을 위한 기업정책과 노동시장 정상화를 위한 노동정책 사이의 유기적 보완대책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예컨대, 원사업자의 공정거래 의무를 1차 협력업체만이 아니라 2 · 3차 협력업체로까지 확대 적용하는 방향으로 하도급법 체계를 개선하고, 초과이익공유(협력이익배분)2 · 3차 협력업체로까지 적용범위를 넓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합니다. 현 정부 2기 경제팀의 가계소득 증대세제 3대 패키지도 이런 방향으로 재설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2000년대 이후 미국과 유럽에서 시행한 빈곤퇴치 및 사회통합 정책 중에서 가장 효과적인 것이 최저임금 인상이었다고 합니다. 최저임금의 인상은 한계 중소기업의 고용을 줄임으로써 오히려 저소득층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주장도 있기는 하지만, 소비성향이 높은 계층의 임금소득 증가는 내수를 자극하여 중소기업은 물론 경제 전체의 성장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는 실증연구 결과가 더 많습니다. 평균임금 또는 중위임금 대비 최저임금 수준을 기준으로 할 때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 중에서 가장 낮은 편에 속합니다. 2015년 올해의 최저임금은 시간당 5,580원이고, 2016년의 최저임금은 6,030원으로 책정되었습니다. 솔직히 너무 낮습니다. 5년 정도의 시한을 정하여 최저임금을 평균임금의 일정 비율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단기적으로 충격을 받은 영세기업에 대해서는 재정 · 세제상의 지원책도 동시에 시행해야 합니다.

    끝으로, 증세 문제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조속히 시작해야 합니다. 사회복지제도의 확충을 위해서는 물론, 동반성장 시책의 충실한 집행을 위해서도 상당한 정도의 정부 재원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현재의 조세체계, 그리고 현 정부의 간접 증세 기조만으로는 필요한 재원을 마련할 수 없다는 것도 자명합니다. 물론 증세를 좋아하는 국민은 없습니다. 여야를 막론하고 모든 정치인들은 증세 문제를 언급조차 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러나 침묵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조세부담률 또는 사회보장세를 합한 국민부담률을 어느 수준으로까지 끌어올릴 것인지, 간접 증세와 직접 증세는 어떻게 결합할 것인지, 보편 증세와 부자 증세의 갈등은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 소득세 · 법인세 · 부가가치세 등의 세목별 구성과 세율은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 등에 대해 국민적 논의와 공감대 형성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학계의 합리적 연구와 시민사회의 적극적 참여를 통해 복지부동하는 여야 정치권을 올바른 방향으로 견인해야 합니다.

     

    III.4 동반성장의 과실과 사회공동체 운영원리

    그러면 이상에서 자세히 말씀드린 동반성장의 원리와 시책을 통해 우리가 얻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요? 첫째, 성장이 촉진되고 지속적 성장의 기초가 됩니다. 한국경제는 인구가 5천만이 넘으면서도 1인당 소득이 2만 달러가 넘는 5020 그룹에 속하게 되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일본 · 중국에 비해 국가신인도가 같거나 높아졌습니다. 그러나 투자가 부진하여 잠재성장력이 떨어졌습니다. 대기업은 돈은 많으나 투자대상이 부족하고 중소기업은 투자대상은 있으나 돈이 없습니다. 따라서 투자증진을 위해서는 대기업에는 첨단, 핵심기술을 많이 제공해야 합니다. 그것은 중기적으로는 R&D의 방향전환, D에서 R로의 점진적 전환이 필요하고 장기적으로는 교육혁신을 통해 국민 전체의 창의성을 제고해야 합니다. 이것들은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그러나 단기적으로는 대기업으로 흐를 돈이 합리적으로 중소기업에 흘러가게 함으로써 중소기업의 투자를 촉진하면 단기적 성장을 이루고 지속적 성장의 기초를 쌓을 수 있습니다.

    둘째, 동반성장은 여러 가지 양극화로 인한 사회갈등과 분열을 해소하는 데 기여할 것입니다. 부자와 빈자, 강남과 강북, 수도권과 비수도권,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등으로 양극화된 사회는 경제적 효율은 물론 정치사회적 안정도 확보할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동반성장은 약자들의 생활을 개선함으로써 사후적 복지수요를 줄이는 사전적 복지제도의 역할도 수행합니다.

    쇼펜하우어는 모든 진리는 첫째 단계에서 조롱당하고, 둘째 단계에서는 심한 반대에 부딪치며, 셋째 단계에서야 비로소 자명한 것으로 인정받는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나는 우리 사회에서 동반성장론이 지난 수년간 쇼펜하우어의 첫째와 둘째 단계를 거쳐 이제는 셋째 단계로 접근하고 있는 중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 각 경제주체들이 상호 공존하기 위해 특별한 노력과 정성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동반성장은 영영 이상으로만 남게 될 것입니다. 특히, 정부의 강력한 정책의지 속에 대기업의 선도적 변화와 중소기업의 자조가 어우러진 삼위일체가 동반성장의 핵심 동력입니다.

    동반성장은 20세기와 구분되는 21세기 우리 사회의 시대정신(Zeitgeist)입니다. 그것을 이루지 못하면 서민경제가 파탄나고, 경제 전체가 붕괴되어 사회를 유지하기 힘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에 성공하면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한국경제가 다시 한 번 도약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동반성장은 기업과 경제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21세기 글로벌 시대를 살아가는 삶의 철학이자 새로운 사회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근본 가치입니다.

    이러한 동반성장은 궁극적으로는 남에 대한 배려에서 시작됩니다. 제 경험부터 소개하겠습니다. 저는 중고등학교 시절 집안이 가난해서 입주과외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학교에 다녔습니다. 그런 저에게 정신적 스승이 되어 주신 스코필드(F.W. Schofield; 한국명 석호필) 박사님은 진정한 배려와 봉사의 삶이 어떤 것인지 가르쳐주신 분입니다. 영국 태생 캐나다인으로 고학으로 학업을 마친 박사님은 저에게 학비를 지원해주셨을 뿐 아니라, 친할아버지처럼 자상하게 희망과 용기를 바탕으로 홀로 서는 법을 가르쳐주셨습니다. 20세기 초반에는 조선 독립의 필요성과 필연성을 해외에 널리 알려 민족대표 34으로 추앙을 받으며 조선을 치료한 의사이셨습니다만, 1958년부터 1970년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서울대, 연세대에서 강의를 하시면서 저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경제적 도움을 베푸셨습니다. 특히 저에게 스코필드 교수님은 평생 삶의 나침반이 되어주신 은인이었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스코필드 선생님처럼 우리사회의 곳곳에서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배려하고 멘토의 역할을 해줄 수 있는 빛과 소금이 되기를 고대합니다.

    스코필드 박사님이 저에게 깨우쳐준 선견지명의 하나는 한국이 빈익빈 부익부사회로 갈 것이라는 가르침이었습니다. 박사님의 예견대로 한국은 양극화 사회로 접어든지 오래입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대로 경제성장은 일부 대기업들의 힘에 의존하고 있고, 중산층은 붕괴해가고, 서민들은 생존의 위협에 내몰리고 있습니다. 청년실업과 비정규직 양산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습니다. 지속적인 성장을 가로막고 사회적 갈등과 불안의 요인이 되고 있는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고자 저는 총리 재임 시절 특단의 조치를 대통령에게 건의하였고, 총리퇴임 후에는 2010년 말에 설립된 동반성장위원회를 맡아 14개월간 열심히 일했습니다. 또한 동반성장위원회를 그만둔 후에는 순수민간연구소인 ()동반성장연구소를 설립하여 동반성장문화의 조성과 확산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동반성장은 더불어 잘 사는 사회’ ‘모두에게 공정한 기회를 주는 사회’ ‘꿈과 도전을 기대할 수 있는 공정한 사회를 모두 함께 만들어가자는 것입니다. 일찍이 맹자가 말한 항산항심론(恒産恒心論)’을 깊이 되새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백성들이 의주가 넉넉할 때 비로소 변하지 않는 도덕심이 저절로 함양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양극화를 해소하고 성장의 가치를 공유할 수 있을 때 국민 모두가 남을 배려하고, 서로 관용하고, 건강한 공동체를 일구는 일에 앞장서는 훌륭한 공민으로 성숙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우리 나라의 지도자적 위치에 있거나 앞으로 그렇게 될 여러분이 이 과제를 해결하는데 선도적인 역할을 맡아주시기를 당부드립니다.

     

     

    . 교육혁신 - 장기적 성장전략

     

    교육투자를 통해 육성한 인적자원이 과거 한국경제 고도성장의 주역이었다면 어떻게 미래의 지속적 발전을 책임질 인재들을 차질 없이 확보할 수 있을까요? 저의 대답은 바로 우수한 교육입니다.

     

    IV.1 체력창의력 함양

    먼저 사회의 다양한 부문에서 양극화가 고착되고 그에 따라 심신의 스트레스가 과중한 우리 사회에서 학생들의 심신을 건강하게 길러주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학생들이 마음껏 공부하고 당당한 자신감을 갖도록 심신을 단련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육체적 힘을 키우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는 게 제 믿음입니다. 오래전 영국에서 연구할 때 추운 겨울에 이튼 칼리지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2월에 학생들에게 반소매 상의와 반바지를 입힌 채 차가운 진흙탕에서 레슬링을 시키는 이유를 설명하던 강사의 말이 아직도 기억에 선명합니다. “이게 우리가 미래 지도자들을 기르는 방식입니다. 19세기 총리들은 대부분 이튼 졸업생들이었죠. 하나같이 키 크고 강한 사나이들로, 빅토리아 여왕 재위 기간에 대영제국을 건설한 장본인들입니다. 그런데 20세기 들어서자 약해 빠진 사람들이 총리로 선출돼서 대영제국은 패권을 미국에 넘겨줘야 했습니다.” 그 강사가 농담하는 것 같기는 했습니다만, 그의 말 일부는 진심으로 느껴졌습니다.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우리말도 있지 않습니까.

    창의력은 육체적 힘만큼 또는 그보다도 더 중요한 요소로서, 교육이 새로운 세대에 함양해야 하는 특성입니다. 새롭게 그리고 다르게 생각하는 능력을 일컫는 창의력은 특히 연구개발 부문에 필요한 것으로, 연구개발은 최첨단 투자사업의 설계 및 실행에 필수적입니다.

    제가 서울대학교 총장 재직 중에 서울대는 학생들의 비판적이고 창의적인 사고력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교수법을 지식전달에서 지식창출로 변환하는 데 모든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또한 학생들이 기존의 사고방식에 도전하고 이를 향상하며 새로운 생각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학문 과정을 재설계 했습니다. 따라서 인문학과 사회과학을 포함하는 기초과학 및 교양교육의 질을 향상했을 뿐 아니라, 학생들이 인종 및 민족 · 성과 성차별 · 탈식민주의 등에 대해 공부함으로써 윤리의식을 함양하고 문화적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도록 새로운 핵심과목을 개설했습니다.

    또한 고품질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서 우리는 학생 수를 대폭 감축함으로써 학생 대 교수 비율을 낮췄습니다. 국가경제와 마찬가지로, 지난날 한국의 교육은 성장에 치중했습니다. 실제로 현재 한국에는 200개의 4년제 대학과 160개의 2년제 대학이 있으며, 대학생은 전체 인구의 4% 전후인데, 이는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비율에 속합니다. 한국의 대학교육은 너무 많이, 너무 빨리 성장해서 더 이상 우수한 제품을 생산할 수 없는 산업처럼 되어버렸었습니다. 교육에 필요한 개혁중 하나는 바로 대다수의 대학을 대상으로 숫자와 규모를 줄이는 일입니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우리는 한층 질 중심적이고 창의적이며 혁신적인 대학교육을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창의적 사고에는 다양성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필수적입니다. 다양한 학생과 교수진, 그리고 양자가 한데 모이는 다양한 환경 이 모든 것이 필요합니다. 지금 한국 대학들은 교육과 연구에서의 세계적 협조를 강조함으로써 국제화를 증진하고 있습니다. 좋은 현상입니다. 다양한 문화와 다양한 경험에 익숙한 사람만이 유연하게 사고하고, 풍부한 상상력을 기반으로 독창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법입니다.

    저는 총장으로 일하는 동안, 신입생의 1/4~1/3을 전국에서 선발함으로써 전체 학생이 모든 지역을 골고루 대표할 수 있도록 지역균형선발제도를 도입하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제가 처음 고안해낸 제도가 아닙니다. 미국 대학들은 인종 · 소득 · 지역간 균형을 보장하기 위하여 60여년 전부터 이와 비슷한 제도를 시행해왔습니다. 이러한 제도는 학생들과 교수진 모두 보다 광범위한 간접경험을 통해 자신들을 풍요롭게 하도록 보장합니다. 개인들의 창의적 사고를 유발하고 궁극적으로 대학을 지식의 전달자로부터 지식의 창조자로 변화시키는 것은 색다르고 새로운 아이디어이며, 이것을 자극하는 것은 결국 폭넓은 간접경험입니다. 대학이 지식의 창조자로 기능할 때 비로소 기업들이 요구하는 수준의 인재를 공급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수한 교육이란 또 낯선 상황, 나아가 위기에 적응하는 능력과 역경을 극복하는 능력을 갖춘 미래의 지도자들을 양성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미래의 지도자들이 일찍부터 새로운 도전을 통해 자신감과 융통성을 겸비하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자신감과 융통성이야말로 급변하는 세계 환경 속에서 이들이 효율적으로 성공에 도달하도록 해주는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학교가 우리 젊은이들이게 이러한 특성을 길러줄 만큼 양호하다면, 우리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요? 어떤 지식이 가장 중요한지 물으신다면 저는 바로 언어라고 답하고 싶습니다. 특히 모국어는 도목수가 마음먹은 것은 무엇이든 만들 수 있게 해주는 연장통과도 같습니다. 언어에 대한 지식이 깊고 넓을 때 우리는 비로소 명료한 사고를 할 수 있게 됩니다. 명료한 사고는 설득력 있는 추론을 가능케 해주며, 추론이 모여 사상체계를 형성하고, 사상체계가 모여서 마침내 하나의 문화가 이룩됩니다. 활력 있는 문화 없이 그 어느 사회도 일류 제도를 구비하고 번창할 수 없습니다. 언어에 대한 숙련도를 향상하기 위해서는 학교 졸업 이후에도 평생 동안 읽고, 말하고, 써야 합니다.

    요약하면 대학들은 지속적 경제성장에 기여할 수 있는 우수한 교육제도를 추구하면서 창의적 인재들을 양성하는 핵심적 역할을 자임해야 합니다. 대학은 단지 지식의 전달이나 오락 또는 사교만을 위한 장소가 아니며, 즉시 적용 가능한 실용적 기술을 습득하기 위한 장소 또한 분명히 아닙니다. 대학은 미래를 만드는 통합적 사고능력을 함양하는 장소여야 합니다. 학생들이 향후 어느 직업을 선택하든 스스로 배우고, 평생 동안 변화하는 이 세계에 계속해서 적응할 수 있도록 대학은 이들의 잠재력을 길러주어야 합니다. 이 점에서 한국의 대학들은 모방을 통한 규모 확대라는 기존의 모형이 아니라 창의력을 통한 품질 향상을 추구하는 새로운 모형으로 환골탈태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훌륭한 인재를 기르는 일은 곧 훌륭한 사람을 기르는 일이라는 것을 언제나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답게 사는 길을 묻는 일과 유리된 지식은 한번 써먹고 마는 소모품과 다를 바 없습니다. 한 개인이 아무리 잘 나도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법을 배우지 못하면 필경 남에게 질시와 배척의 대상이 되고 말 것이며, 결코 어디에서도 존중받는 리더가 될 수 없습니다.

     

    IV.2 학제간 유기적 협력

    한편 미래사회가 요구하는 우수한 인재를 길러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대학의 연구와 교육에서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영국의 저명한 이론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우리가 살아갈 21세기를 내다보며 이렇게 진단했습니다: “21세기는 복잡성의 세기가 될 것이다.”(The next century will be the century of complexity.) 현대사회에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문제들은 결코 특정한 전문분야의 해법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고도의 복잡성을 띱니다.

    단적인 예로, 인구 문제만 해도 그렇습니다. 알다시피 한국은 세계 최하위의 저출산 국가입니다. 여기에는 입시지옥에 시달리는 청소년 문제, 공교육의 붕괴, 전통적 가족단위의 붕괴, 저성장과 양극화, 청년실업, 고령화 사회의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무한경쟁 사회에서 당연한 가치로 통용되는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를 과연 어떻게 공동체의 윤리로 승화시킬 것인가? 어떻게 사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삶이고 인간다운 삶인가? 넓게는 이러한 근본적인 가치와 철학의 문제와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이들 문제는 교육학 · 경제학 · 정치학 · 인구사회학 · 사회심리학 · 윤리학 · 인문학이 머리를 맞대고 함께 고민할 때만 총체적인 해결책이 나올 수 있습니다. 이런 문제들에 대해 함께 대안을 모색하고, 그렇게 해서 이 사회가 그래도 살만한 사회이고 희망과 미래가 있다는 비전을 공유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자식을 낳아서 키워보고 싶은 마음도 생길 것입니다.

    단일한 변수로는 진단하기 어려운 복잡한 문제가 사회 도처에 잠복해 있는 21세기 사회에 대처하기 위하여 이제 대학의 연구와 교육은 다양한 학문 분야들 사이의 유기적 소통과 협력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대학의 연구와 교육은 단지 상아탑 안에서 단순 재생산되는 폐쇄성을 허물고,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가치를 창출하여 파급시킴으로써 사회 공동체의 기틀을 바로 세우는 데 기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럴 때 대학은 국민으로부터 존중과 사랑을 받고, 그럼으로써 현재 OECD국가 평균의 절반 수준에 불과한 대학교육에 대한 지원도 대폭적으로 이루어질 입니다. 이러한 선순환의 구조를 확립할 때 비로소 대학의 연구와 교육도 비약적인 질적 향상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분과 학문의 틀을 넘어서자는 취지에서 한 가지 더 제안을 드리고자 합니다. 근래에 와서 전통적인 문과이과의 구분을 허물자는 논의가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습니다. 문과와 이과의 구별은 정신과학자연과학의 이원체계에 근거한 근대 학문의 체계와 더불어 탄생한 오랜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양자의 구분을 극복한다는 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일이 아니고 오랜 준비와 신중한 접근을 요구합니다. 그렇긴 하지만, 미래를 내다보면서 대학의 연구와 교육에서 우선 가능한 범위 안에서 문과와 이과의 상호접근을 모색하는 일은 매우 긴요합니다. 예를 들자면 사람답게 사는 길을 궁구하는 인문학은 우리가 몸담고 사는 구체적 사회현실에 대한 인식을 겸비해야 합니다. 아울러 우리의 생활환경을 지배하고 경제성장의 원천을 제공하는 과학기술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도 갖추어야 합니다. 그럴 때 인문학이 지향하는 가치는 현실적 설득력과 폭넓은 공감을 얻을 수 있고, 많은 사람들에게 단순한 관념이 아니라 진정한 실천지’(實踐知, Phronesis)로서 공유될 수 있을 것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사회과학과 자연과학도 다른 분야와의 접근을 적극적으로 추구해야 합니다.

    이러한 기틀 위에서 대학의 연구와 교육이 수월성을 추구한다면 지식기반사회가 요구하는 평생학습능력도 자연스럽게 길러질 수 있을 것입니다. 복합적 요인들이 작용하는 구체적 사회현실에서 출발하여 그에 대처하는 폭넓은 안목을 기른다면, 다양한 직종에서 새롭게 제기되는 문제들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기초체력이 생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기초체력이야말로 어떤 환경에도 적응하고 평생 버틸 수 있다는 자신감의 원천입니다. 학생들이 배우는 과정에서부터 그런 자신감을 가질 수 있을 때 비로소 배움은 마지못해 하는 고역이 아니라, 자신의 미래를 설계하는 즐거움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그리고 그럴 때에만 학습의 효과는 배가될 수 있습니다.

     

     

    V. 한국사회의 불의부정부패

     

    우리 사회가 양극화의 나락으로 빠져들게 된 근저에는 단순히 경제성장 전략의 문제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보다 근원적인 의미에서 우리 사회의 질서 자체가 서서히 붕괴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맨 밑바닥에 불의와 부정이 도사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월호 사태를 바라보면서 많은 국민들이 느꼈던 실망과 좌절, 그리고 분노는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정부, 상식이 먹혀들지 않는 사회, 그리고 그 밑바닥에 끝간 데 없이 거미줄처럼 뻗어있는 부패의 구조,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돈 먹는 공무원, 돈 주는 기업인, 이권을 추구하는 정치, 기득권에 안주하는 언론계와 학계, 정의에 눈 감은 사법부, 도그마에 빠진 종교계, 그리고 영리 추구의 온상으로 변한 상아탑 등이 우리 사회의 솔직한 단면입니다.

    부정과 부패는 단발성에 그치지 않고 거대한 먹이사슬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 구조는 더불어 살기보다는 끼리끼리 살기를 추구하고, 힘없는 자를 위해 정의를 세우기 보다는 힘있는 자를 위해 불의를 눈감아 주고 있습니다. 한 때 우리 사회의 공감대였던 보다 나은 미래, 더 잘사는 사회는 사라지고, “그들만의 잔치, 비상구가 없는 사회로 변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할아버지가 부자인 사람은 맞선 시장에서도 환영받지만, 가진 것이 개인의 능력 하나 밖에 없는 사람은 그 능력을 펼칠 기회도 점점 줄어드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젊은이들이 꿈을 잃고 있습니다. 결혼도, 취업도 할 수 없고, 노력해도 안되는 것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너무도 일찍 온 몸으로 깨우치고 있습니다. 그들이 좌절하고 병들어갈 때, 우리 사회의 미래도 병들어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사회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이 부정과 부패의 구조를 깨지 않으면 안됩니다. 부정과 부패의 구조는 우리 사회의 도처에 널려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부정부패하면 가장 먼저 정치권을 떠올립니다. 그런 면도 있습니다. 우리 정치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정치가 된 지 오래입니다. 그러나 부패의 문제에 과연 정치권이 가장 선두에 있는 지는 의문입니다. 저는 오히려 정치권의 부패를 거론하는 것이 다른 부문의 부패를 은폐하는 수단이 될까 염려스럽습니다.

    교육계는 깨끗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많은 사학재단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며 장수하고 있습니다. 가장 자유스럽고 민주적이어야 할 교육현장은 가장 권위적이며 위선적이기까지 합니다. 사학재단에 조금이라도 개혁의 칼끝을 넣으려고 했던 정권은 모두 격렬한 저항에 부딪혔습니다.

    법조계는 어떻습니까? 몇몇 대형 로펌은 재벌 못지않은 권력과 부를 축적한 지 오랩니다. 이들은 블랙홀처럼 돈을 빨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생산적 경제활동과는 거리가 멉니다. 왜 고위 관료들이 퇴직하면 대형 로펌의 고문으로 가겠습니까? 어떻게 판사와 검사들이 퇴직하면 1년도 안되는 기간 동안에 몇십억원의 돈을 손에 넣을 수 있겠습니까?

    공무원들이 수많은 산하단체를 거느리면서 현직에 있을 때는 이권을 챙겨 주고, 퇴직하면 그것을 향유하는 구조는 이제 너무나 만연해서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 좋을지 알 수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번 세월호 사태는 우연히도 그 빙산의 일각을 보여 주었을 뿐입니다.

    얼마 전 우리나라를 방문하셨던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화해평화의 메시지를 전하고 가셨습니다. 그러나 그 분은 화해와 평화가 정의의 결과임을 분명히 하는 것도 잊지 않으셨습니다. 우리 사회가 하나의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정의가 바로 서야 합니다. 부정과 부패의 구조가 일소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국민들이 진정으로 화해할 수 있고, 사회의 발전을 위해 힘을 합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썩은 기둥을 뽑아내는 것만으로 새 집을 지을 수는 없습니다. 서재필 선생은 1세기 전에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목수가 헌 집을 고치려면 썩은 기둥과 서까래를 갈아내야 할 터인데, 그 기둥과 서까래를 빼내기 전에 새 기둥과 새 서까래를 준비하였다가 묵은 재목을 빼내면서 새 재목을 대신 집어넣어야 집이 무너지지 않고 네 기둥이 튼튼히 선다. 그런 연후에 도배와 장판과 유리창도 하고 좋은 물건도 방과 마루에 놓아야 일이 성실히 되고, 다 된 후에 사람이 살게 되는 것이다. 만약 목수가 새 기둥도 준비하지 아니하고 기둥이 썩었다고 그저 그 기둥만 빼버린다면 보기 싫은 기둥이 없어졌으니 상쾌하기는 하겠지만 새 기둥이 옛것 대신 들어서지 못한 즉 집이 무너지기 쉬운 것이다.”

    이 말에는 제대로 된 준비도 없이 성급하게 갑신정변에 참여했다가 좌절하고 핍박 끝에 미국으로 망명했던 서재필 선생의 뼈저린 자기성찰이 담겨 있습니다. 요컨대 국가개조와 국력신장 등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멀리 내다보면서 오랜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기초를 튼튼히 하여 세월호 참사와 같은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아야 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체력창의력을 함양하고 학제간 유기적 협력을 지향하는 교육이 새로운 기둥을 만들고 집을 튼튼하게 지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I. 한국 정치체제의 개혁

     

    한국의 교육제도가 훌륭한 인재를 양성해낼 수 있을 만큼 성공적으로 변하더라도, 이것이 실질적 경제성장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핵심적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분야가 있습니다. 바로 우리 정치입니다.

    한국의 정치체제는 국민의 공통적인 소망과 바람을 실현해줄 수 있는 전반적인 제도개혁을 온전히 이루지 못했으며, 이에 많은 국민들은 좌절감을 느껴왔습니다. 물론 한국의 정치는 유력한 개인 또는 집단이 그들의 의지를 국민의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 되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은 비교적 강력한 민주주의 체제를 구축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신생국 중에서 경제발전과 정치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한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처럼 한국 정치가 큰 성과를 이룬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운용되는 절차가 사회의 다양한 세력 간 견해차를 해소할 수 있는 단계로까지 발전하지는 못했다는 점에서 그렇게 효율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사실은 정당들이 우리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와 갈등을 조정하여 실제 정책결정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합의를 도출해내는 역할을 충분히 수행해오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저는 정치부문에서의 변화를 위해 조순 선생이 제안한 아이디어, 즉 내각책임제다당제를 받아들이자는 아이디어에 공감합니다. 그것을 여기서 소개하고자 합니다.

    “ · · · 정치가 제몫을 하려면, 정당이 제 구실을 해야 한다. 한국의 두 정당은 이념을 같이하는 정치단체라기보다는, 네편 내편의 편 가르기에서 형성된 두 개의 정치그룹이라고 볼 수 있다. 두 정당은 각각 보수와 진보를 표방하면서, 선거에 승리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이지만, 현실정치에서 두 당의 정견(政見) 차이는 크지 않다. 그러면서도 국민과의 관계는 멀다. · · · 정당과 국회의 낮은 생산성에 대해, 여론은 늘 비판적이며, 정치인과 국회의원은 국민의 빈축을 사기 일쑤다. 그러다보니, 뜻있는 좋은 사람이 정치에 투신하는 경우가 적고, 간혹 괜찮은 사람이 정계에 투신한다고 해도, 그 자신의 장점과 정체성을 살리기는 어렵다. · · · 그런데도 고정관념에 얽매인 우리 정치인과 국민은 이 체질을 혁파할 시도는 아예 생각도 하지 않고 있다. · · · 우리나라 정치의 생산성을 높이자면 대통령제를 폐지하고 내각제를, 양당제 대신 다당제를 채택해야 한다. 고정관념의 포로가 되어있는 사람들은 양당제를 가지고도 정치의 혼란을 막을 수 없는데, 다당제를 한다면 나라는 정치 혼란의 도가니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이라 주장할 것이다. · · · 제왕적 대통령제와 양당제는 정치의 불모(不毛)를 가지고 왔고, 끝내는 나라의 모습을 세월호처럼 만들지 않았는가. 내각제, 다당제는 · · · 정당이 국민과 가까워지게 만들 것이다. 편 가르기와 무관한 새로운 사람이 정치에 참여할 기회를 얻으면서 정치의 활성화를 가지고 올 것이다. 이 제도에서는 보수진보의 양당만 있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추구해야 할 특정 분야, 이를테면, 환경보호, 복지증진, 중소기업, 교육, 보건 등의 발전을 표방하는 정당이 나올 것이다. 이런 정당들은 각각 일정비율(이를테면 5%)의 유권자 지지를 얻어야 정당의 지위를 인정받는다. 어떤 당이든 유권자의 5%를 얻기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많은 당이 난립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다당제에서 제1당이 돼도 단독으로 안정적인 내각을 구성하기는 힘들 것이므로 제1당은 2, 3개의 작은 당과 연립해서 조각(組閣)할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정당들은 민주주의적인 협상은 해야 하겠지만 지금처럼 두 당이 죽기 살기로 서로 물고 늘어질 일은 없을 것이다. 각 당은 상당한 전문지식을 살리면서 정권에 참여할 것이므로 자신과 긍지를 가지고 정계의 자체정화(自體淨化)를 만들어 낼 것이다.

    사실 제왕적 대통령제와 양당제는 18세기 미국에는 알맞은 제도였다. 오늘에 와서 그 제도는, 미국에서 보는 것처럼, 대통령과 야당 간의 양보 없는 대립, 타협 없는 마찰을 불러와서 민주주의의 위기상황을 만들어내고, 같은 당 안에서도 분열을 조장하고 있다.“

    여기에 덧붙여 말씀드리자면, 이 서경(書經)이 말하듯이 오로지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니[民惟邦本], 근본이 튼튼해야 나라가 평안하다.”는 민본(民本)정신으로 거듭날 때에만 정치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나라가 제대로 돌아갈 것입니다.

     


    <저작권자©경북포스트.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15-11-20 17:53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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